역대인물

역대인물

역대인물

近代의 人物
작성자관리자(test@test.com)작성일2011-12-23조회수2024
파일첨부

近代의 人物

 

 * 세영(世永) - 26세손 대사헌(大司憲), 농상공대신

 

 * 항섭(恒燮) - 28세손 백범(白凡)先生을 보좌하며 대 한임시정부선전부장으로

                    항일운동에 앞장선 애국열사

 

 * 상섭공(詳燮公)

28世孫 詳燮公은 1907年(純宗卽位年) 5月25日 전남 광양군에서 태어나 향리에서 修學하고 1925年에 全州師範學校를 졸업하고 1938年까지 영암. 벌교 등지에서 初等學校訓導를 지냈습니다. 1938年에 日本高等文官試驗司法科에 합격하고 1945年까지 咸興地方檢察廳檢事를 지내셨습니다. 公께서는 排日思想이 투철하여 日帝의 創氏改名에 應하지 아니하고 소위 思想檢事 아닌 一般檢事로만 지냈습니다. 祖國光復후 1945年네 서울地方檢察廳檢事로 출발하여 1948年에 大檢察廳次長檢事, 釜山地方檢察廳長을 역임했습니다. 이후 辯護士로 活動하며 中央大學, 弘益大學등에서 刑法을 講義하였습니다.

公은 政治에 뜻을 품고 1950年 5月 第二代民議院選擧에 無所屬으로 全南光陽에서 當選되어 政界에 進出하였습니다.

6.25動亂發生으로 1951年 부산피란 國會에서 法司委員으로 지내며 新刑法記草審議委員이 되어 法案을 作成 提案했습니다. 1952年 에 國民防衛軍事件調査委員이 되어 큰 물의를 빚은 그 責任者 處罰을 주장했습니다. 1951年부터 1954年까지 弘益大學長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1955年 9月 公은 申翼熙前國會議長, 張勉, 趙炳玉, 郭尙勳, 鄭一亨 등과 民主黨을 창당한후 中央黨務委員이 되고 서울 龍山地區黨委員長에 선출되었습니다.

公은 1956年 民議院選擧에서 용산구에서 民主黨소속으로 當選되고 이때부터 자유당 獨裁政治에 앞장 셨습니다.

李承晩大統領 下野한 뒤에 許政過渡政府가 樹立되자 國會法司委員長을 지내며 憲法記草委員長을 지내며 헌번기초위원장에 選出되어 內閣責任制改憲案을 推進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5月2日 午後2時 會議 도중 뇌일혈로 卒倒하여 急逝하시니 享年54歲였습니다.

 

 * 민영공(敏永公) 

  1915년 경북 경산 태생으로 1939년 일본구주제국대학법학부를 졸업하고 미국노스웨스턴대학대학원을 수료하고 일본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후 임실과 무주군수를 지내셨으며, 8.15해방후에 전라북도농산부장을 거쳐 전라남도농림국장 역임. 그후 서울대학교법과대학부교수, 1757년 경희대학교법학대학장, 1960년 민주당참의원, 1963년 내무부장관, 1967년 주일대사를 역임.

이전글 抗日獨立運動의 인물
다음글 嚴皇貴妃와 家門의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