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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古典散策】 법치냐 덕치냐-엄재억
작성자관리자(test@test.com)작성일2012-05-04조회수1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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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5. 1 영월신문에 게재된 내용임

 

 

 古典散策】 법치냐 덕치냐  

 

원문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풀이>   법령으로 인도하고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들은 그것을 면하고서도 수치심이 없어지게 된다. 덕성으로 인도하고 예로 다스리면 수치스러워하는 데다 귀복하게 된다. <길잡이>   공자의 말이다. 여기서 道는 도導, 즉 '인도하다', '이끈다'는 뜻으로 쓰였다. 

 갑골문에 보이는 民의 자형은 한 쪽 눈이 찔린 전쟁 포로 또는 노예를 나타내고 있다. 이것이 나중에는 문자를 해독하지 못하는 피지배 계급의 의미로 전화되었다. 공자 당시의 民 또한 오늘날의 서민이라는 의미보다는 이런 뜻으로 쓰였다고 볼 수 있다. 格은 무슨 뜻일까? 주희는 두 가지 뜻을 제시한다. 하나는 至, 즉 [선善에] 이른다는 뜻이며 다른 하나는 正, 즉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반면 양뽀쥔楊伯峻은 格을 歸服, 즉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어 복종하는 것으로 본다. 근거와 설득력 면에서 후자가 더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자로' 16과 관련해서도 해석이 가능하다. 

 <깊이읽기>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Ruth F. Benedict(1887~1948)는 그의 역작 '국화와 칼'(1946)에서 일본과 미국의 문화를 각각 수치심의 문화와 죄책감의 문화로 대별한 바 있다. 수치심의 문화에서는 타자의 시선이 행동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이런 문화권에서는 아무리 나쁜 행동이라도 외부의 강제력이 가해지지 않으면 태연히 시도될 수 있다. 반면 죄책감의 문화에서는 내 안의 양심이 판단의 최종 근거가 된다. 이 때문에 남이 전혀 모르는 비행이라 하더라도 행위자는 심한 자책에 시달릴 수가 있다. 공자가 꿈꾼 이상적 사회는 아무래도 후자인 것 같다.     

 개인의 차원에서 양심에 기반한 자성自省과 선의지의 자발적 실천을, 사회·정치적 차원에서 유덕자有德者에 의한 선도와 교화를 유가가 추구했다면, 법가는 유가의 이런 기획과 기대를 실현될 수 없는 몽상이라고 비관한다. 따라서 법가는 "도덕적 교화보다는 법적 제재에 주력해야 한다[不務德而務法]"('한비자韓非子' '현학顯學')고 역설다. 

  이 두 관점 사이에는 인간 존재의 가능성을 두고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전제가 대립하고 있는 셈이다. 현실을 냉정하게 통찰한 것은 법가 쪽이다. 그들이 전국시대의 혼란을 수습, 통일하는 사상적 패권을 거머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변방의 진秦나라가 급속히 강성해져 중원을 차지하고 더 나아가 춘추전국시대의 최종 승자가 된 데에는 법가의 사회 개혁 플랜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점 또한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법가의 통치 이념에 기반한 진나라는 십 수년도 채 안 돼 멸망하고야 말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글ㆍ엄재억∥인문고전사랑방 "동인同人"(http://edongin.kr)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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