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曾子有疾, 召門弟子, 고전산책(엄재억)
작성자관리자(test@test.com)작성일2012-04-06조회수1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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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월신문 2012. 4. 2  인용

  

  원문   曾子有疾, 召門弟子,           

            증자유질, 소문제자,         

             曰: 啓予足, 啓予手.            

              왈: 계여족, 계여수.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시]운: '전전긍긍, 여림심연, 여리박빙',            

          而今而後, 吾知免夫! 풀이   증선생이 병석에 눕게 되자 문하의 제자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이불을 걷어 내 손발을 보게. 『고대시가집󰡕에서 '두렵고도 조심스레, 깊은 못 마주하듯, 살얼음 밟듯'이라고 했는데, 이보게들, 이제야 내 거기서 벗어나게 되나보네!"  길잡이   啓는 開와 같은 뜻이다. 여기서는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보라는 의미다. 여기 인용된 󰡔시󰡕는 「소아·소민」, 다시 말해 󰡔고대시가집󰡕에 실린 「작은 아악·높은 하늘」 중의 한 구절이다. 임금이 좋지 않은 계책으로 나라를 다스려 혼란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고 대부가 경계한 것이 주내용이다. 여기서 언급된 인용구는 그 끝자락에 해당된다. 

  증자, 즉 증선생은 이 구절을 끌어쓰되 원의와는 달리 해석해 자신의 생명을 잘 관리하라는 경계로 삼았던 것이다. 요즈음도 안절부절못하는 상태를 가리켜 '전전긍긍'이라고 곧잘 표현하곤 하는데 바로 여기서 나온 말이다. 戰戰은 두려워하는 모양, 兢兢은 삼가고 조심하는 모양이다. 夫는 '사내', '남편'이라는 뜻 말고도 문두에 위치하면 '무릇', '대저'라는 뜻의 발어사로도 쓰인다. 여기서처럼 문미에 자리하면 주로 감탄의 어기語氣를 나타내게 된다.   

  깊이읽기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남기는 말은 아무래도 자신이 살아오면서 가장 소중히 여겼던 것, 가장 아쉬웠던 것,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간절한 당부 등이 그 내용일 것이다. 

  거기에는 그만큼 삶의 진실이 가감 없이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증선생은 유교 사상가 중 가장 효를 강조한 이답게 삶을 마감하는 자리에서도 제자들에게 효를 강조하고 있다.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이 몸을 조금이라도 다치지나 않을까 늘 조바심 내며 살아왔네. 그렇게 한 평생 살면서 손발에 자그마한 상처 하나 없이 지내왔다네. 나 이제 내 몸 온전히 보존하는 소임을 다한 채 왔던 곳으로 돌아가려네. 자네들도 이 점을 유념하시게." 많은 이들이 곧잘 인용하곤 하는 󰡔효경󰡕 첫머리 "몸과 터럭, 살갗은 어버이께 물려받은 것인 만큼 함부로 다치게 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라는 구절은 이제 "신체발부는 나만의 것, 개조 성형이 몸값 상승"이라는 말로 버전업(?)돼야 할 판이다. 

  유교는 생명의 연쇄를 중시한다. '맹자' 「이루ㆍ상」에서 자식 없는 것이 가장 큰 불효라고 한 것 또한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이는 또한 한국인들이 무의식적으로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증선생의 당부에도 내 몸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전제돼 있다. 

  내 몸이라는 개체 생명도 따지고 보면 위 아래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명의 연쇄 중 한 부분일 뿐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신체관의 변화인가? 우리 사회에만 불어닥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세계 일류를 자랑하기에까지 이른 요즈음의 성형 열풍을 보면 말이다. 자신을 무한한 생명의 연쇄 속에서 파악하며 조심하는 시대와 어느 누구도 나 자신을 대신할 수 없다며 내 몸의 전유권專有權을 당당히 주장하는 시대……. 가끔 나는 전근대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글ㆍ엄재억∥인문고전사랑방 "동인同人"(http://edongin.kr)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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