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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재억의 고전 산책
작성자관리자(test@test.com)작성일2012-03-21조회수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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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散策 (영월 신문 제974호. 2012. 3. 19 인용함)

 

군자와 소인: 고난에 대처하는 두 인간 유형

 

원문   在陳絶糧, 從者病, 莫能興.        

          재진절량, 종자병, 막능흥.         

          子路慍見, 曰: "君子亦有窮乎?"              

          자로온현, 왈: "군자역유궁호?"      

         子曰: "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

        [출전: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자왈: "군자고궁, 소인궁사람의."  풀이   진나라에서 양식이 다 떨어지고 수행자들은 병이 들어 아무도 일어나지 못했다. 자로는 발끈하며 이렇게 따졌다.    "군자도 곤경에 빠질 때가 있답니까?"   그러자 스승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군자는 고난에 처해도 그 상황을 굳게 지켜내지만 소인이 곤경에 빠지면 정도正道를 거스른다네." 길잡이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시킬 군주를 만나기 위해 천하를 철환한 공자의 행보를 주유천하周遊天下라고 한다. 이 구절은 그 과정이 과연 '고난의 행군'이었음을 짐작하게 해주는 증거다. 공자보다 아홉 살 아래이자 소싯적에 건달 세계에서 껌 좀 씹었던 자로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비꼬는 뉘앙스가 전해지는 듯하다. "참 내, 이것 보시오 스승님! 평소 군자, 군자하고 노래를 부르시더니만 꼴 한 번 좋습니다. 

   아니, 군자도 이런 곤경에 빠질 때가 있답니까?" 스승인 공자라고 해서 이 상황이 맘 편할 리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 공자는 짐짓 담담하고도 나직한 어조로 저렇게 대꾸했다. 고궁固窮을 '진실로 궁하다'로 풀이하는 역서들이 많다. 그러나 固는 '고수固守하다', 즉 '굳게 지켜낸다'는 뜻이다. 공자는 자한에서도 고난을 겪어봐야 사람됨을 알게 된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깊이읽기   정치적 난국에 부닥쳤을 때 어떻게 처신했는지를 보면 그 정치인의 기본 소양이 뚜렷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2002년 새천년민주당 경선 과정이 이를 잘 보여준 사례였다고 생각한다. 당시 대세론을 등에 업었던 이인제 후보는 막상 경선을 치르며 예상 밖의 고전을 면치 못하자 라이벌로 급부상한 노무현 후보에게 색깔론을 제기해 열세를 만회하고자 했다. 정도正道를 저버린 것이다. 반면 노무현 후보는 1990년 3당 합당 편승 거부 뒤 총선과 지방 선거에서 연거푸 낙선하면서도 지역주의와 보수 언론에 정면으로 맞서는 우직한 정치 행보를 보였다. 고궁固窮, 즉 고난의 상황을 굳게 지켜내는 원칙주의자의 면모를 보인 것이다.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색깔 공세에 대해서도 우회로를 택하지 않았다. 결과는 군자다운 정치인의 승리와 소인같은 정치인의 몰락이었다. 한때 3김 이후 최고의 차세대 리더로 꼽히기도 했던 이인제 후보는 경선 결과 불복(1997) 및 경선 중도 사퇴와 탈당(2002), 타정당 합류, 무소속 출마 등의 어지러운 행보를 거치며 전국적 거물 정치인에서 고향 사람들에게만 지지를 받는 정치인으로 전락했다. 반면 노무현 후보는 오랜 시련을 꿋꿋이 이겨내고 역경을 정면으로 돌파한 끝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그러나 나는 대통령 당선 이전과 당선 이후의 노무현에 대한 평가를 달리한다).

  아무리 고립무원의 상황에 빠졌다 해도 나쁜 길의 유혹에 쉽사리 무릎을 꿇어선 안될 일이다. 고난의 험로를 얼마나 빨리 넘어섰느냐 하는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 그것은 고난을 마주하는 이의 의지와 태도이기 때문이다. 받아야 할 고난이라면 시대적 소명을 외면하지 않고 온몸으로 그것을 맞서는 이, 역사는 그런 이에게 흔쾌히 다음 기회를 허락하곤 했다. 

 

글ㆍ엄재억∥인문고전사랑방 "동인同人"(http://edongin.kr)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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