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커뮤니티

자유게시판

정월 대보름
작성자관리자(test@test.com)작성일2012-02-02조회수1171
파일첨부
 

정월 대보름날은 그해 첫 번째 드는 큰 보름날이라는 뜻으로

추석과 함께 대표적인 우리의 명절이다.


우리 민속에서 보름이 강조되는 것은 ‘밝음’사상과 관련이 있으며

농경문화에 기조를 둔 풍요관념이 많고

미리 한 해의 풍년을 예측하고 간접적으로 각종 놀이나

경쟁을 통해 미리 점치는 행사들로 나눈다.


또한 건강을 기원하며 ‘우리’가 ‘하나’가 되는

단란한 명절의 모습을 보여준다.


‘보름’이라는 명칭은 ‘밝음’에서 ‘ㄱ’음이 탈락되고

아래 아음이 없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보름’으로 정착된 것으로 본다.


정월 대보름날을 오기일(烏忌日)이라고도 하며,

한자어로는 '상원(上元)' 또는 원소절(元宵節)이라고 한다.


오기일(午忌日)은 삼국유사 기이(紀異) 제1 사금갑 조에

“신라의 풍속에 매년 정월 상해(上亥)·상자(上子)·상오일(上午日)에는

백사를 삼가 감히 동작을 아니하고, 15일을 오기일이라 하여

찰밥으로 제사지내니 지금에도 행하고 있다. 이언에 이것을 달도라 하니,

슬퍼하고 근심해서 백사를 금기하는 뜻이다”라고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오기일(午忌日)은 오기일(烏忌日)을 가리킨다.

烏는 ‘까마귀 오’가 아닌 ‘효조(孝鳥) 오’의 잘못이다.


'상원'은 도교적인 명칭으로,

삼원(三元 상원, 중원, 하원) 중 첫 번째이다.


원소절에 탕원(湯圓)을 먹는 풍습이 있어 탕원을 "원소"라고 부른다

원소란 달콤한 깨 등을 넣고 찹쌀가루로 싸서 찐

일종의 동글동글한 떡으로 이 "元宵"라는 말에는

"團圓"(단란하게)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상원(上元)' 또는 원소절(元宵節)에 대한 쓰임말을 보면,

1132년 고려 인종은 “옛사람의 교훈에, '수만 년을 쌓으면

반드시 동지(冬至) 갑자(甲子)일을 만나

일월과 오성(五星)이 모두 자(子)에 모이므로

'상원(上元)'이라 일컬어 역의 시초가 된다' 하였는데,


이제 11월 6일 동지에 그날 밤중은 갑자에 해당하여

삼원(三元 상ㆍ중ㆍ하원)의 시초가 되니

묵은 것을 버리고 새것으로 개혁할 것이다.”라고 고려사절요는 전하고 있다.


또 이규보(李奎報)는 ‘상원(上元) 초례문’ 선고축문(先告祝文)에

‘하늘이 멀어 사람은 상제의 뜰에 올라갈 수 없으니

신(神)께서 심부름으로 대신 영장(靈場)에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고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남겼다.


1416년 (태종 16) ‘왕명으로 상원(上元)의 장등(張燈)을 없앴다’라 했고,

세조 9년(1463) ‘세속(世俗)에 해마다 상원(上元)에

전가(田家)의 농잠(農蠶)의 형상을 베풀어

한 해[一年]의 풍념(豊稔)의 조짐을 삼았다.’했으며,


유호인(兪好仁 1445∼1494)은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 밤

달맞이가 참으로 어김없겠다(年年上元夜 候月眞不差)‘

라 하여 上元이라는 말을 썼다.


元宵라는 말은 이규보가 고율시(古律詩)에

‘대보름밤 오늘에야 어연에 시립케 되니(元宵御宴今宵侍)라 썼고,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은 그의 저서 청음집(13권)에

‘원소에는 달빛 고와 흥을 탈 만하거니와(元宵月色興堪乘)’라 하여

고려와 조선조 학자들이 시어로도 써왔음을 볼 수 있다.


이 날 농부들은 새벽 축시(丑時)에 오곡밥과

각종 나물을 차려놓기도 하고 달맞이, 달집태우기, 쥐불놀이,

더위팔기, 부럼깨물기를 하며, 마을단위로 연날리기,

지신밟기와 농악놀이를 하고 서낭에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율력서에 "정월은 천지인 삼자가 합일하고

사람을 받들어 일을 이루며, 모든 부족이

하늘의 뜻에 따라 화합하는 달"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 해를 시작하는 정월 대보름날,

조상님들의 지혜를 빌어

모쪼록 화합과 소통의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이전글 장수 비결
다음글 2012신년하례회 준비 수고 많았습니다. (엄덕수 법무사 응급법률상담기사, 2012.1.31.경향신문)